바지선 위의 응원단
지난달, 시애틀 사운더스 구단은 화물 바지선 한 척을 통째로 개조해 월드컵 공식 응원 공간을 만들었다. 우루과이-카보베르데전에서 카보베르데가 자국 역사상 첫 월드컵 골을 넣던 순간, 관중석이 요동쳐 배가 흔들렸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
갑판 위엔 인조잔디가 깔려 있고 아이들이 축구공을 차며 뛰어다닌다. 거대한 스크린 앞으로 맥주를 든 사람들이 몰려 있다. 이곳은 시애틀 사운더스가 만든 월드컵 공식 응원 장소 — 정확히는, 진짜 바지선 위다.
미국 프로축구 리그 MLS가 마주한 상황은 문제이자 기회였다. 전 세계 대부분 나라에서 축구는 두말할 것 없는 1위 스포츠지만, 미국에서는 아니다. 그런데 그 월드컵이, 이번 여름 미국 땅에서 열렸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 US 대표팀을, 혹은 각자 자기 나라 대표팀을 응원한다는 것 — 지금 세상엔 이런 종류의 하나됨이 필요하다.
— 에릭 올슨, LA 팬존을 찾은 다큐멘터리 감독그런데 왜 "사커"라고 부를까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 미국·캐나다는 왜 이 스포츠를 "사커(soccer)"라고 부를까 — 정작 이 단어, 원조는 영국이다.
1863년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만든 정식 명칭 "association football"에서, 1880년대 옥스퍼드 학생들이 아침식사(breakfast)를 "brekker", 럭비(rugby)를 "rugger"라 줄여 부르던 것과 같은 놀이로 "asSOCiation"의 "soc"에 "-er"를 붙여 "soccer"를 만들었다. 영국 신문들도 1980년대까지 이 단어를 꽤 오래 썼다. 미국에서는 "football"이 이미 자국 스포츠(미식축구)의 이름으로 선점돼 있었을 뿐이다.
내가 어렸을 땐 '사커'라는 말이 아무 문제 없이 쓰였다. 미국인이 이 단어를 쓴다고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 이건 엄연한 영어 단어니까.
— 스테판 시마니스키, 미시간대 명예교수이미 할 건 다 했다
미국이 남자 월드컵을 개최한 건 1994년이 처음이자 이번이 두 번째다. 당시 개최 조건 중 하나가 "이 대회의 열기로 미국 최상위 프로축구 리그를 출범시킬 것"이었고, 2년 뒤 MLS가 출범했다.
그로부터 30년, MLS는 이미 "뻔한" 성장 카드를 다 썼다. 10개 구단에서 30개 구단으로, MLB·NBA와 같은 규모가 됐고 전 경기가 중계된다. 그렇다면 이번 월드컵으로 MLS는 정확히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각 구단은 저마다 다른 도박을 걸고 있다.
필드 오브 드림스 — 보스턴
보스턴 지역 구단 뉴잉글랜드 레볼루션 사장 브라이언 빌렐로는 1994년 월드컵 당시 MIT 학부생 자원봉사자였다. 사무실 벽에 걸린 그리스-아르헨티나전 사진 속, 마라도나의 골 세리머니 배경엔 열아홉 살의 그가 있다.
그의 전략은 단순하다. 사람들이 현장에서 직접 골 세리머니를 함께해보면, 축구의 열기를 몸으로 알게 된다는 것. 그래서 그는 수년간 슬라이드 자료를 들고 자기 구단 경기장을 월드컵 개최지로 유치하는 데 매달렸고, 결국 보스턴은 8강전을 포함해 7경기를 유치했다. MLS 티켓은 월드컵보다 훨씬 저렴하다 — 라이브 축구에 맛을 들인 사람이라면, 그 갈증을 MLS로 채울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건 우리가 미식축구, 야구, 농구를 상대로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험이다. 그리고 월드컵이 그 승부를 가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 브라이언 빌렐로, 뉴잉글랜드 레볼루션 사장코스트코 시식 전략 — 시카고
시카고는 8년 전 개최 도시 신청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카고 파이어는 보스턴과 같은 전략을 쓸 수 없었다. 대신 200만~300만 달러를 어디에 쓸지부터 고민해야 했다.
결국 택한 건 도시 한 블록을 빌려 여는 대형 왓치파티였다. 실내엔 초대형 스포츠바, 야외엔 사방으로 경기를 송출하는 대형 스크린을 둔 비어가든까지. 목적은 단순 흥행이 아니라 이메일과 연락처를 남기게 하고, 소속 선수와 로컬 아티스트 협업 굿즈를 알리는 것 — 축구를 "대용량 시식 상품"처럼 파는 전략이다.
내가 코스트코에서 테리야키 미트볼 800개짜리 박스를 사게 될 줄 몰랐던 것처럼, 시식 한 번이면 사람들은 축구에 반한다.
— 데이브 볼드윈, 시카고 파이어 사장왜 미국은 축구를 완전히 사랑하지 못할까
흥행 지표만 보면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조심스럽다.
서던캘리포니아대(USC) 스포츠법 전문가 제프 슈나이더는 "축구가 변방에서 주류로 넘어온 건 맞지만, 미식축구나 농구처럼 사회 전체의 시대정신이 되긴 어렵다"고 말한다. 미식축구·야구는 확실한 승자와 압도적인 스코어를 내주는 스포츠지만, 축구는 0-0으로 끝나도 이상하지 않고 한 왕조가 영구히 리그를 지배하기도 어렵다.
미국인들은 '지지 않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패트리어츠나 양키스처럼 해마다 압도적으로 이기는 팀이 없다는 것 — 그게 축구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 제프 슈나이더, USC 스포츠법 전문가그럼에도 저변은 착실히 넓어지고 있다. UCLA 로스쿨 스티브 뱅크 교수는 그 배경으로 미식축구를 하던 유소년들이 뇌진탕 우려로 축구로 옮겨왔다는 점을 꼽는다. 여기에 축구 강국 출신 이민자 유입, FIFA 비디오게임의 대중화까지 겹치며 저변이 꾸준히 넓어졌다는 설명이다.
월드컵을 개최하면, 리그가 큰다는 보장이 있을까
여기 불편한 진실이 하나 있다. 월드컵 개최국의 국내 리그를 추적한 연구에 따르면, 결과는 뒤죽박죽이다.
| 사례 | 개최 이후 국내리그 효과 | 비고 |
|---|---|---|
| 다수 개최국 | 일시 상승 | 대회 후 관중 증가, 다만 시간이 지나며 다시 원래 수준으로 |
| 이탈리아 (1990) | 오히려 감소 | 대회 이후 국내리그 관중이 줄어든 사례 |
| 자료: 월드컵 개최국 국내리그 흥행 추적 연구 종합 | ||
즉 "월드컵을 우리 나라에서 열기만 하면 자동으로 리그가 큰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각 구단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거액을 쏟아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짜 승부처 — 관중이 아니라 선수
MLS 본부 최고비즈니스책임자 카밀로 두라나는 이번 대회에 리그 역사상 최대 마케팅비를 집행했다. 슬로건은 이렇다 — "고마워요, 세계. 이제부턴 우리가 맡을게요."
20년 전이었다면 우스갯소리였을 이 슬로건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다. 3년 전 리오넬 메시가 MLS 구단과 계약했고, 두라나는 메시 같은 선수가 리그의 궤적 자체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 대표팀 | 전지훈련 캠프 |
|---|---|
| 아르헨티나 | 캔자스시티 MLS 구단 시설 |
| 브라질 | 뉴저지 최신 훈련시설 |
| 그 외 약 10개국 | MLS 구단 훈련시설 사용 |
| 자료: NPR Planet Money 인터뷰 종합 | |
음바페가 우리 훈련장을 보고 가면 좋겠다. 그게 그의 미래 결정에 영향을 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동료들에게 미치는 영향만으로도 충분하다.
— 카밀로 두라나, MLS 최고비즈니스책임자노림수는 명확하다. 세계 최고 선수들이 유럽에만 남아있는 한 미국 축구가 커질 수 있는 한계는 정해져 있다. 반대로 메시급 선수를 한 명이라도 더 데려올 수 있다면 리그 전체의 급이 올라간다. 실제로 이번 대회에서 메시는 해트트릭을 포함해 대회 역대 최다골 타이기록까지 세우며 "MLS에 와도 기량이 죽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
세 개의 판
결국 이번 월드컵을 둘러싼 MLS의 움직임은 서로 다른 세 개의 도박판 위에서 동시에 벌어졌다.
결국 축구는 팬덤 네트워크 게임이다
세 전략은 서로 달라 보이지만 한 가지 원리를 공유한다 — 스포츠는 함께 응원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재밌어지는, 일종의 네트워크 효과 상품이라는 것. 왓치파티든, 경기장 유치든, 스타 선수 영입이든, 목적은 결국 "이 팀에는 이미 함께할 무리가 있다"는 걸 잠재 팬에게 보여주는 일이다.
다만 데이터가 보여주듯 월드컵 개최 자체가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 게다가 "지지 않아야 재밌다"는 미국 특유의 스포츠 정서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진짜 변수는 그다음 4년, MLS가 이 순간에 뿌린 씨앗을 어떻게 실제 관중석과 이적 시장으로 옮겨오느냐에 달려 있다.
- NPR Planet Money, "Can World Cup mania grow MLS in the U.S.?" (2026.07.17)
- BBC News, "Is this a breakthrough moment for soccer in the US?" (2026.07.06)
- BBC News, "Why is football called 'soccer' in the US and Canada?" (2026.06.14)
- Ampere Analysis 스포츠 미디어 리서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