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질적으로는 20년째 제자리
한국 서비스업은 GDP의 44%, 취업자의 65%를 차지하는 경제의 근간이다. 그러나 생산성을 들여다보면 낯선 민낯이 드러난다.
1970년 이후 민간 서비스업은 경제 규모와 고용 양면에서 제조업을 추월해 성장했다. 이름값이 대단해 보이지만, 1인당 노동생산성은 지난 20년 넘게 제조업의 40% 수준에서 단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다. 일본이나 독일도 제조-서비스 간 생산성 격차가 있지만, 한국은 그 격차가 유독 깊다.
팬데믹은 기대를 키웠다. 비대면 전환의 물결 속에 금융·정보통신·전문과학기술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의 생산성이 일시적으로 치솟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2022년을 정점으로 생산성이 반전 하락해, 현재는 팬데믹 이전 장기추세를 약 10% 밑도는 수준까지 내려앉았다.
"서비스업 생산성 정체는 일부 업종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경제 전반에 내재한 구조적 성장제약이 드러나는 단면이다."
— BOK 이슈노트 제2025-18호, 한국은행저부가가치 서비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도소매·숙박음식·운수창고 등은 팬데믹 충격 직후 생산성이 급락한 뒤 회복이 더뎌 여전히 팬데믹 이전 추세를 약 7% 하회하고 있다.
한국은행 보고서는 구조적 취약성을 세 가지로 집약한다. 첫째, 서비스업이 오랜 기간 제조업 수출을 '뒷받침하는 보완재'로만 인식돼 왔다. 서비스업 투자율은 2000년 26%에서 2022년 18%로 하락했고, 자본시장 내 시가총액도 제조업의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둘째, 고부가가치 서비스는 국내 수요와 공공발주에 지나치게 의존한다. 지식서비스 기업 총매출의 98%가 내수에서 나오고, 해외 진출 경험이 있는 기업은 겨우 2.2%다. 셋째, 저부가가치 서비스는 '회전문식 경쟁'의 악순환에 빠져 있다. 2024년 기준 자영업자의 60%가 저부가가치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그중 73%가 1인 영업이다.
K콘텐츠가 다시 그리는
관광 지도
드라마 한 편이 관광객의 소비 동선을 바꿨다. 면세점에서 올리브영으로, 성형외과에서 피부과로.
글로벌 OTT 플랫폼 시장은 2024년 3,170억 달러에서 2034년 2조 8,000억 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넷플릭스 이용자의 80% 이상이 K콘텐츠를 시청하며, K콘텐츠 시청자의 한국 방문 의향(72%)은 비시청자(36%)의 정확히 두 배다.
방한 외국인의 여행 관심 계기로 '한류 콘텐츠'를 꼽은 비중은 2023년 32.1%에서 2025년 42.3%로 뛰었다. 방한 기간 중 참여 활동 1위(80.3%)와 만족도 1위(19.2%) 모두 식도락 관광이 차지했다. 비빔밥과 불고기의 시대는 지났다 — 이제는 드라마에서 본 편의점 삼각김밥과 로컬 카페를 찾아온다.
'한국인처럼 살아보기' — 관광의 축이 장소에서 라이프스타일로 이동했다. 드라마 촬영지 순례에서 올리브영·다이소·무신사 쇼핑, 피부과 케어까지, 외국인 관광객의 소비 지도가 완전히 다시 그려졌다.
— 하나Knowledge+ 26-7호, 하나금융연구소소비의 무게 중심은 면세점에서 로컬 상권으로 이동했다. 2024년 외국인의 올리브영 이용 금액은 전년 대비 +106%, 무신사는 +343% 증가했다. 의료관광 소비액은 2019년 대비 438% 증가했으며, 피부과 비중은 21.1%에서 57.4%로, 성형외과는 33.4%에서 23.1%로 변화했다.
하나금융연구소는 이 흐름을 '데일리케이션(Dailycation)'이라 명명한다. 한국인의 일상을 직접 경험하는 여행 트렌드로, 한복 체험과 경복궁 방문으로 대표되던 '장소 중심' 관광이 올리브영에서 기초 스킨케어를 고르고 로컬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라이프스타일 중심' 관광으로 진화하고 있다.
지식서비스 수출, 유일한 희망 — 아직 작은 불씨
전체 서비스 수출이 주요국 중 최하위권 성장에 머무는 가운데, 지식서비스만 연평균 13.4%로 달리고 있다.
한국의 서비스 수출은 2010년 이후 연평균 3.8% 성장에 그쳐 세계시장 점유율이 1.9%에서 1.6%로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법률·컨설팅 등 고부가가치 서비스는 선진국에, 저임금 기반 아웃소싱 서비스는 인도·중국에 경쟁력이 뒤처진다.
그러나 지식서비스는 다른 이야기를 쓰고 있다. 2010~2024년 연평균 13.4% 성장해 전체 서비스 수출 증가율의 세 배를 넘겼다. 이 성장의 두 기둥은 제조업-서비스 융합과 문화 콘텐츠의 글로벌 경쟁력이다.
우리나라는 제조 현장에 특화된 응용역량과 양질의 데이터 기반을 바탕으로 산업서비스 분야에서 충분한 비교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 BOK 이슈노트 제2025-06호, 한국은행게임은 글로벌 시장점유율 7.8%로 미국·중국·일본에 이어 4위다. 웹툰은 카카오·네이버 계열사가 글로벌 만화 앱 수익 순위 상위권을 장악하고 있다. 반면 한계도 분명하다 — R&D 기반 지재권은 대부분 본사-자회사 내부거래이며, 영상 콘텐츠는 넷플릭스 등 글로벌 플랫폼에 완성본을 넘기는 구조로 지재권 확보에 구조적 제약이 있다.
수출 품목 경쟁력 지형도 — 금상첨화와 설상가상 사이
2025년 7,093억 달러 수출의 실력을 해부하면, 반도체라는 단일 엔진에 기댄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난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불변시장점유율(CMS) 분석으로 20대 수출 품목의 경쟁력을 해부했다. 경쟁력 요인이 플러스인 11개 품목은 모두 수출이 늘었고, 마이너스인 9개 품목은 대부분 수출이 줄었다. 수출 증감은 글로벌 수요보다 제품 경쟁력이 결정한다는 뜻이다.
주목할 품목은 화장품(+22.2%p)과 농수산식품(+14.0%p)이다. 두 품목은 글로벌 수요가 오히려 약했던 환경에서도 경쟁력 요인만으로 각각 21.8%, 17.0%의 수출 성장을 기록했다. K-뷰티 열풍과 K-드라마·K-팝 연계 식문화 인지도 상승이 직접 작동한 결과다. 반면 이차전지는 3년 연속 경쟁력 마이너스, 특히 미국 시장 기여도 -25.3%p로 20개 품목 중 최악이었다.
| 유형 | 품목 | 경쟁력 기여 | 품목 수요 | 수출 증가율 | 핵심 요인 |
|---|---|---|---|---|---|
| 금상첨화 | 반도체 | +12.1%p | +8.9%p | +25.0% | HBM·DDR5, 중국 시장 경쟁력 확대 |
| 금상첨화 | 선박 | +111.3%p | +16.4%p | +126.0% | 탈탄소 친환경 선박, EU·아세안5 대형 발주 |
| 금상첨화 | 컴퓨터 | +51.4%p | +49.7%p | +105.9% | AI 데이터센터 투자, SSD 기술력 |
| 고군분투 | 화장품 | +22.2%p | −3.4%p | +21.8% | K-뷰티 열풍 전 지역 실구매 전환 |
| 고군분투 | 농수산식품 | +14.0%p | −1.4%p | +17.0% | K-드라마·K-팝 연계 식문화 인지도 |
| 사상누각 | 이차전지 | −30.6%p | +0.1%p | −27.2% | 중국 LFP 저가 공세, 미국 경쟁력 상실 |
| 사상누각 | 일반기계 | −16.4%p | +8.1%p | −5.1% | 중국 저가 범용기계 전방위 공세 |
| 설상가상 | 철강제품 | −3.8%p | −4.9%p | −5.3% | 중국산 저가재 경쟁, 아세안5·EU 상실 |
| 설상가상 | 가전 | −6.3%p | −0.4%p | −2.2% | 중국 업체 경쟁 심화, 미국 2년 연속 약화 |
| 출처: UN Comtrade, Trade Map, 현대경제연구원. 2023년 대비 2024년 기준. 전체 20개 품목 중 대표 선발. | |||||
수출 포트폴리오의 취약성은 숫자로 선명하다. 2025년 반도체 수출 +22.2%, 비반도체 −1.1%. 고무적인 신호는 K브랜드 연계 소비재 — 화장품·농수산식품·생활유아용품이 글로벌 수요 부진에도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은 콘텐츠 파워가 수출 경쟁력으로 전환되는 경로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구조 전환을 위한 정책 나침반
네 편의 보고서가 공통으로 가리키는 방향 — 법·제도 정비, 제조-서비스 융합, 기업화 유도, 관광 소비의 질적 고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