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10년, 중국은 멈추지 않았다
2015년 시진핑이 '중국제조 2025'를 발표했을 때, 서방은 이를 경계했다. 전기차, 반도체, 항공우주, 바이오의약품 등 13개 핵심기술에서 세계 선두를 목표로 한다는 선언이었다. 그로부터 10년, 미국은 관세·수출통제·기업 제재를 총동원해 중국의 기술 굴기를 막으려 했다.
2026년 5월 ITIF(정보기술혁신재단)가 발간한 Hamilton Index는 그 결과를 숫자로 보여준다. 중국의 10대 첨단산업 글로벌 생산 점유율은 1995년 3.5%에서 2022년 24.9%로 올라섰다. 27년간 평균 2,200% 이상 성장했다. 10개 산업 중 7개에서 세계 최대 생산국이다.
미국은 같은 기간 산업 생산량이 평균 약 200% 증가했다. 중국은 산업별로 최소 1,750%, 평균 2,200% 이상 증가했다. 첨단산업 생산 파이의 크기는 GDP 대비 약 11.6%로 27년간 거의 변하지 않았다. 한 나라가 늘면 다른 나라는 그만큼 잃는 구조다.
"과거 27년간의 첨단산업 분석에서 한 가지 교훈이 있다면, 중국은 평범한 경쟁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If there is one takeaway from 27 years of advanced industry analysis, it is that China is not a normal competitor."
— ITIF Hamilton Index 2026
중국이 뜨는 동안, OECD는 가라앉았다
중국의 부상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숫자는 OECD 전체의 점유율 변화다. 1995년 OECD 국가들은 전 세계 첨단산업 생산의 86%를 차지했다. 10달러 중 8.6달러가 OECD에서 만들어졌다. 2022년에는 58%로 떨어졌다. 28%포인트가 사라졌다. 중국의 점유율 증가와 OECD 손실 간 상관계수는 -0.94로, 중국의 득이 OECD의 실이었음을 통계적으로 뒷받침한다.
피해가 가장 큰 분야는 기초금속과 전기장비다. OECD의 기초금속 점유율은 44%포인트 하락했고, 전기장비는 42%포인트 떨어졌다. 1995년 세계 1위였던 일본은 2022년 4위로 내려앉았다. 27년간 점유율이 18%포인트 이상 빠졌다. 독일도 약 5%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한국은 주목할 만한 예외다. 한국의 Hamilton Index LQ(특화지수)는 2.17로 세계 2위이며, '강하고 성장 중인' 산업 4개를 보유해 상위 10개 생산국 중 가장 많다. 반도체를 포함한 전기·전자 분야에 집중적으로 육성해온 전략이 반영된 결과다.
중국이 1위인 곳, 미국이 지킨 곳
10대 첨단산업의 지형은 중국과 미국의 영역이 뚜렷하게 갈린다. 중국은 제조·소재·하드웨어 7개 분야를 장악했고, 미국은 소프트웨어·서비스·의약품·항공우주 3개를 지키고 있다.
| 산업 | 글로벌 규모 | 1위 | 점유율 |
|---|---|---|---|
| 컴퓨터·전자·광학 | $1.6T | 중국 | 24.9% |
| 화학 | $1.3T | 중국 | 28.2% |
| 기계·설비 | $1.3T | 중국 | 33.4% |
| 기초금속 | $1.2T | 중국 | 42.1% |
| 자동차 | $1.2T | 중국 | 25.3% |
| 가공금속 | $1.0T | 중국 | 26.7% |
| 전기장비 | $0.7T | 중국 | 38.5% |
| IT·정보서비스 | $2.4T | 미국 | 36.1% |
| 의약품 | $0.9T | 미국 | 28.5% |
| 기타 운송장비 | $0.4T | 미국 | 38.5% |
미국이 IT·정보서비스에서 압도적인 이유는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메타·애플 같은 빅테크가 클라우드·플랫폼·소프트웨어 생태계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분야를 제외하면 그림이 달라진다. IT를 빼면 중국은 이미 2010년에 미국을 추월해 약 29%의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같은 기준으로 17~19% 사이를 10년 넘게 맴돌고 있다.
얼마나 격차가 벌어졌나 — 중국/미국 점유율 비율
| 산업 | 중국/미국 비율 | |
|---|---|---|
| 기초금속 | 4.24× | |
| 전기장비 | 3.39× | |
| 기계·설비 | 2.29× | |
| 자동차 | 1.83× | |
| 가공금속 | 1.50× | |
| 화학 | 1.12× | |
| 컴퓨터·전자 | 1.09× | |
| 의약품 | 0.61× | |
| 기타 운송장비 | 0.37× | |
| IT·정보서비스 | 0.26× |
이 격차를 해소하려면 미국은 2022년 기준 약 1조 5,000억 달러 규모의 추가 생산이 필요하다. IT·정보서비스 생산량을 거의 두 배로 늘리거나, 컴퓨터·전자 생산량을 4배, 의약품을 6배로 키우는 것과 맞먹는 규모다.
'폭'이 강점이다 — 중국식 산업 지배의 본질
중국의 강점은 특정 분야의 독보적 선두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분산된 역량'이다. Hamilton Index의 헤르핀달-허시먼 지수(HHI)를 보면 중국은 0.02로 주요국 중 가장 낮다. 10개 첨단산업에 거의 균등하게 생산 역량이 분산돼 있다는 뜻이다.
대만(0.36)이나 인도(0.13)처럼 한두 분야에 집중된 나라는 특정 공급망에서 두각을 나타내지만 영향력이 제한적이다. 반면 중국은 기초금속에서 전기장비, 기계설비, 화학, 자동차까지 동시에 장악하고 있다. 중국의 최대 단일 산업인 기초금속조차 전체 첨단산업 생산의 17%에 불과하다.
이 구조는 단기 제재에 내성이 있다. 반도체를 막아도 기계·금속·전기장비·화학이 돌아간다. 2018~2022년 기간 중국의 첨단산업 생산량은 26.1% 성장했고 나머지 세계는 15.6% 성장에 그쳤다. IT를 제외하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 중국 25.9%, 나머지 세계 11.4%.
기계·설비 분야에서 중국의 산업 생산 증가량은 미국의 6.36배였다. 전기장비는 5.06배, 가공금속은 4.11배. IT·정보서비스, 의약품, 기타 운송장비를 제외한 7개 분야에서 중국의 성장 속도가 미국을 앞질렀다. 미국이 강세를 보인 IT 분야조차 제외하면, 중국의 비(非)IT 첨단산업 점유율은 미국의 약 1.5배에 달한다.
막힌 곳과 뚫린 곳 — 반도체 제재의 역설
미국의 수출통제가 효과를 낸 분야가 있다. 첨단 반도체다. 7나노미터 이하 공정의 칩 양산은 현재도 중국의 손이 닿지 않는 영역이다. Bloomberg Intelligence 분석에 따르면 첨단 반도체는 미국의 봉쇄가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예외적 분야다.
그런데 2025년 1월, 이 서사에 균열이 생겼다. 중국의 AI 스타트업 DeepSeek이 발표한 추론 모델 'DeepSeek-R1'이 미국 OpenAI의 o1과 동등한 성능을 보이면서다. 충격은 개발 비용에서 왔다.
MoE 아키텍처로 비용 최적화
약 14배 비용
약 34배 비용
DeepSeek-R1 발표 직후 엔비디아를 비롯한 AI 인프라 기업들의 주가가 급락했다. '고성능 모델 개발에는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기존 통설이 흔들린 것이다. 일본 총무성 ICT 백서는 DeepSeek의 등장을 AI 개발 경쟁의 판도를 뒤흔든 사건으로 명시적으로 기술했다.
DeepSeek의 핵심 기술인 MoE(Mixture of Experts) 아키텍처는 고급 GPU 없이도 효율적인 병렬 연산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첨단 반도체에 접근하지 못하는 제약이 오히려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이'를 실현하는 소프트웨어 혁신을 촉진한 셈이다.
2025년 채택된 15·5 규획(2026~2030)은 이를 국가 목표로 못박았다. 반도체·AI를 포함한 '신품질 생산력' 분야에서 돌파구를 가속화한다는 방향을 명시했다. 막힌 하드웨어 길을 소프트웨어로 우회하는 전략이다.
미국의 대응 — Stargate Project
DeepSeek 충격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역설적이게도 투자 규모를 더 키우는 방향이었다. OpenAI는 2025년부터 4년간 미국 내 AI 인프라 구축에 5,000억 달러(약 78조 엔)를 투자하는 'Stargate Project'를 발표했다. 초기 출자자에는 일본 소프트뱅크가 포함됐다. DeepSeek이 10분의 1 비용으로 비슷한 성능을 냈는데, 미국은 오히려 투자를 수백 배 더 늘리는 방향으로 맞서고 있다.
누가 AI를 더 많이, 더 깊게 쓰는가
일본 총무성 ICT 백서(2025)는 4개국의 생성 AI 이용률을 비교 조사했다. 결과는 중국이 가장 높았다.
2023년 조사 대비 증가 폭도 중국이 가장 컸다. 중국은 56.3%에서 81.2%로 24.9%포인트 상승했다. 미국은 46.3%에서 68.8%로 22.5%포인트, 독일은 34.6%에서 59.2%로 24.6%포인트 올랐다. 중국 사회 전반에 AI 활용이 빠르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신호다.
AI 연구 역량에서도 중국은 미국에 이어 확고한 2위다. 스탠퍼드대 HAI(인간중심 AI 연구소)가 발표한 2023년 AI 활력 랭킹에서 미국이 1위, 중국이 2위를 차지했다. 논문 수를 기준으로 AI 연구력을 순위화한 AIRankings에서도 미국·중국·영국·독일 순으로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다.
ICT 백서의 기업 대상 조사에서 AI를 업무에 활용하는 비율 역시 중국(60%)이 미국(39.2%)을 크게 앞질렀다. AI 기술의 연구·개발에서 이용률까지, 중국은 제조업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드웨어 제약을 소프트웨어 적용 밀도로 상쇄하고 있다.
휴머노이드 — AI와 제조업이 만나는 곳
첨단 제조업 역량과 AI 기술이 합쳐지는 다음 전장이 이미 열렸다. 휴머노이드(인형 로봇)다. AI의 화상 인식·자연어 처리 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인간의 형상을 한 로봇이 공장은 물론 가정과 사회 인프라에서 인간의 작업을 보조·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ICT 백서에 따르면 현재 미국·중국을 중심으로 상용화를 목표로 한 개발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 현재는 제조 현장과 공장의 시험 도입을 주목적으로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가사·오락 등 일상생활 활용을 목표로 하는 기업들도 등장하고 있다.
미국이 고성능·고가 모델로 산업 현장에 먼저 진입하는 전략이라면, 중국은 Unitree G1처럼 1만 6,000달러의 저가를 내세워 보급 속도를 높이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 구도는 전기차와 판박이다. BYD가 가격 경쟁력으로 전기차 시장 판도를 바꾼 것처럼, 중국 휴머노이드 기업들도 '저렴하게 빠르게 많이'를 노리고 있다.
AI 붐이 중국에 선물한 것, 그리고 감춘 것
2026년 들어 중국 산업이익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4월 단월 산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4.7% 급등했다. 1~4월 누계는 18% 이상 증가했다. 2023년 11월 이후 가장 빠른 속도다. 그런데 그 구조가 이야기의 전부다.
미국 하이퍼스케일러들의 대규모 AI 인프라 투자가 중국산 전자부품·칩·인쇄회로기판·광섬유·특수전자소재에 대한 수요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렸다. 전자산업 이익은 1~4월 108% 증가했고, 이 분야 하나가 전체 산업이익 증가분의 절반 가까이를 담당했다. 특수전자소재와 광섬유는 각각 600%, 340%라는 경이적인 수치를 기록했다.
"강한 헤드라인 수치에도 불구하고 회복은 여전히 협소하고 섹터에 한정되어 있다. 광범위한 내수 기반의 회복이 아니다."
"Despite the strong headline figure, the recovery is still narrow and sector-driven, not broad-based."
— Lynn Song, ING Bank 수석 이코노미스트
이면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가구 업체들의 이익은 54% 폭락했다. 섬유·의류는 14% 감소, 자동차는 17% 감소로 2022년 중반 이후 최악의 판매 수축을 기록했다. AI 수혜의 역설은 정책에도 파고든다. AI가 만든 가속 인플레이션으로 금리 인하 시점이 3분기에서 4분기로 밀렸다. 내수 부진 해결을 위해 완화가 필요하지만, AI가 만든 가격 압력이 이를 지연시키는 아이러니다.
15·5 규획이 그리는 2030년
2025년 10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채택된 15·5 규획(2026~2030)은 중국의 기술 굴기를 이해하는 핵심 문서다. 미·중 무역협상 전날 발표된 이 계획은 향후 5년간의 전략적 방향을 12개 테마로 정리한다.
판테온 매크로이코노믹스의 수석 중국 이코노미스트 덩컨 리글리는 이 계획이 '선진 제조업을 근간으로 삼는 성장 모델의 두 배 강화'를 선언한다고 평가했다. 2020년 5개년 계획 공보에는 소비가 단 1회 언급됐지만, 이번에는 4번 등장했다. 그러나 구체적 재정 지원 방안은 여전히 조심스러운 톤이다.
GDP 대비 민간 소비 비중은 약 40%로, 2019년 수준에서 거의 변하지 않았다. 글로벌 기준으로 낮고, 내수 부진은 디플레이션 압력의 핵심 원인이다. 매쿼리 그룹의 수석 중국 이코노미스트 래리 후는 '이 전환의 타이밍은 베이징의 5개년 계획보다 워싱턴의 정책에 더 크게 달려 있다'고 말했다.
회담 테이블 위의 기술 패권 — 5월 14일 미·중 정상회담
2026년 5월 14일, 트럼프 대통령이 9년 만에 방중해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미국-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위기 속에서 열린 이 회담은 '세기의 회담'이라는 기대에도 실질적 성과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KIDA(한국국방연구원)에 따르면 이번 회담을 관통하는 중국의 전략 키워드는 '안정'이다. 내년 가을 시진핑의 4연임 여부를 결정할 제21차 당대회가 예정돼 있다. 15·5 규획 초기 성과도 필요하다. 이 시점에 미국과의 전면 충돌은 중국에 절대 이롭지 않다.
한국은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가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미국의 반도체 동맹 강화 요구와 중국의 공급망 자립 속에서 어느 쪽도 쉬운 선택지가 아니다. 미·중 관계가 안정되면 수출 여건이 개선될 수 있지만, 주한미군 일부 방공망 반출에서 보듯 한반도 안보 환경도 미·중 경쟁의 파장에서 자유롭지 않다.
미국이 막는 동안, 중국은 더 넓게 깔았다
10년간의 미국 제재 결과를 요약하면 이렇다. 막힌 곳(첨단 반도체)은 있다. 하지만 뚫린 곳(제조업 전반, AI 소프트웨어, 휴머노이드)이 훨씬 많다. 그리고 AI 수요라는 예상치 못한 수혜가 중국 전자산업에 또 다른 성장 동력을 안겨줬다.
Hamilton Index가 보여주는 중국의 진짜 강점은 HHI 0.02라는 숫자다. 10개 첨단산업 전반에 균등하게 깔린 두꺼운 산업 생태계는 단일 분야 제재에 흔들리지 않는다. DeepSeek이 보여준 것처럼, 하드웨어를 막으면 소프트웨어로 우회한다. Unitree G1이 보여주는 것처럼, 고성능 경쟁이 아닌 저가 보급 경쟁으로 판을 바꾼다.
반도체, AI 인프라, 휴머노이드, 희토류·핵심광물 공급망이 앞으로의 전장이다. Stargate와 DeepSeek, 그리고 이 둘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동맹국들의 선택이 2027년 이후 구도를 결정한다. 트럼프 2기와 시진핑 4연임이 맞물리는 그 시점이, 두 번째 변곡점이다.